평범한 조지의 현실 이야기, 영화 “멋진 인생” 1부

(편집자 : 기고문은 연합감리교뉴스의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TV 나오는 고전 영화 <멋진 인생> 대한 김영일 교수의 글로,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이야기로 재해석한 1부다.)

사진 제공, 김영일 교수.사진 제공, 김영일 교수.

베드포드 폴스 마을에 사는 조지 베일리는 모범적이고 이타심이 넘치는 청년이다. 세계 일주를 다녀온 후, 건축학도가 되고 싶었던 그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사업인 저축대부조합을 계승하여, 동생과 마을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집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그는 마을 사람들에겐 없어선 안 되는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36살의 젊은 나이에,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밤 왜 자신의 생명을 버리려고 마을에 있는 강 위 다리 난간에 서 있는 것일까?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하던 선한 사람 조지에게 예기치 못한 큰 불행이 들이닥쳤다. 조지의 삼촌 빌리가 잃어버린 중앙은행에 입금해야 할 8천 달러를 마을 경제를 뒤흔드는 악덕 사업가 헨리가 숨기면서, 은행은 파산하고, 조지는 그 책임을 떠안고 감옥에 구속된 것이다.

결국 자신의 생명 보험금을 받아 은행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투신하려고 난간 위에 선 조지를 위한 마을 사람들의 기도는 수호천사 클라란스를 강에 빠져 죽어가는 백발노인으로 지상에 나타나게 해 그의 죽음을 막는다.

클라란스는 조지가 하소연하듯 내뱉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라는 말에, 조지가 존재하는 “베드포드” 대신 헨리가 지배하는 “포터스빌”을 상상게 만들고, 암흑과도 같은 세상에서 헨리의 횡포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살아 돌아온 조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기적을 만든다.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그를 위해 은행으로 몰려와 잃어버렸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모금하게 되고, 그 배려와 사랑으로 인해 은행이 기사회생하게 된 것이다.

수호천사 클라란스가 두고 간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친구가 있는 한 누구도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라는 메모처럼,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조지와 조지를 구하기 위해 기도했던 마을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은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인가를 조명해 준다.

 

코로나19대유행의 상황에서 다시 보는 “멋진 인생”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 영화의 상황과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속에서의 삶엔 유사성이 있다.

영화 속에서 조지 베일리는 그가 사는 마을의 이웃들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생긴 단 하나의 실수, 그것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 타인의 실수로 의도치 않게 파산에 이르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위기에 빠뜨린다. 행복했던 삶은 근심과 걱정 그리고 슬픔과 우울로 가득 차고, 결국 좌절 속에 허덕이던 조지를 자살이라는 최후의 방법으로 내몬다. 여기서 조지가 잃어버린 삶의 의미는 바꿔말하면 외로움의 극치이다.

202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거리두기와 외출 자제령 같은 사회 활동 제한을 강요했고, 외부활동이 급감한 상태로 답답함과 불안함 속에 상자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좌절과 외로움 그리고 관계의 단절로 인해, “버려진 자” 또는 “잊혀진 자”가 되고 만다.

이렇게 삶의 의미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탈출구로 여기는 사람들을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교회가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공급하며, 소속감과 연대감과 함께 마음의 평화와 제한성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멋진 인생”이란 영화를 여러 해 동안 미국의 TV 방송국들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방영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외롭고 버려진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bottom-up approach)로 다가오심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교회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보살핌을 본받아 소리 없이 섬기고 희생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필자는 과거에 어려울 때 그리고 외로울 때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God will Take Care of You)”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마음의 위안을 받곤 했다.

영화 “멋진 인생”의 스틸컷 갈무리 콜라쥐.영화 “멋진 인생”의 스틸컷 갈무리 콜라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을 부여받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생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개개인에게 달려있다.

이 영화의 주제인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은 생명”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의롭고 강직한 인물인 조지가 역경을 헤쳐나가며,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순수한 모습에서 감독인 프랭크 카프라 특유의 휴머니즘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조지와 대조적인 삶을 사는 헨리를 통해 그 선택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루알리미 광고 박스 이미지 연합감리교뉴스에서 제공하는 주간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를 받아보시려면, 지금 신청하세요.

조지 베일리는 꿈을 가진 청년이었지만, 자신의 꿈을 따라 살지 못하고 현실에 얽매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보살피며, 자신의 이익 추구보다 이웃의 안녕을 우선시했다. 즉, 조지는 설정한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헨리의 온갖 음모와 술수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모두의 사랑을 받는 멋진 인생을 살았다.

그와 대조적인 삶을 산 다른 한 사람은 헨리이다.

헨리는 자신의 부 축적을 위해 이웃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이웃은 그를 살찌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에게 현실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의 나”이며, 끝없는 탐욕과 자기중심적인 무관용적 인격을 지닌 그의 가치관은 찰스 티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1950)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와 닿아있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 (City of God)에는 두 도성이 소개된다.

두 가지 사랑이 만든 도성은 삶의 두 가지 태도와 두 가치를 표현한다. 지상에 있는 도성에서의 사랑은 이기주의적이고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뿐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부정한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에 있는 도성의 사람들은 순수하며 자비롭고,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부정한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이렇게 하나님과 이웃 모두에게 직접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을 넘어, 이웃 안에서 그들의 사랑이 가지는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이 발견되며, 발전되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주는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 이 코로나 시기를 사는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한가? 지루하고 의미 없으며, 고통스러운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가? 남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있는가? 공동체를 위한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는가?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tkim@umnews.org이메일 또는 전화 630-797-6848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

개체교회
2019년 3월 18-22일 애리조나 리뎀투어리스트 수양관에서 열린 영성형성 아카데미에 참석한 사람들. 사진 김응선 목사, UMNS.

사모들을 위한 <영성형성 아카데미>에 참가를 원하면 등록 서둘러야

2022년 3월 21일(월)부터 25일(금)까지 5일간 애리조나주 투산에 소재한 리뎀투어리스트 수양관에서 진행되는 사모들을 위한 <영성형성 아카데미>에 참가를 원하면 등록을 서둘러야 한다.
개체교회
사진, 위스컨신 연회 홈페이지의 Soul Food for the New Year 글에서 갈무리.

새해에는 이런 교회 되기를

교회가 우리 시대의 오만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살펴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이웃을 존중하는 폭넓고 넉넉하게 사랑하자는 정희수 감독의 새해 다짐.
개체교회
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의 포스터. 이 영화는 필립 반 도렌 스턴(Philip Van Doren Stern)의 단편소설 “위대한 선물(The Greatest Gift)”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평범한 조지의 현실 이야기, 영화 “멋진 인생” 2부

코로나 시대에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영화 <멋진 인생>을 통해 윤리신학적으로 성찰해본 김영일 교수의 글 2부다.